“복제아기 탄생 현실화” 인간존엄성 논란 재연
[한겨레 2004-02-12 19:45]
[한겨레] 종교계 “생명을 도구화…비윤리적”
난자 매매 ‘여성몸 상품화’우려도
“복제아기의 탄생이 갑자기 현실로 다가왔다.” 〈뉴욕타임스〉는 12일(한국시각) 서울대 문신용·황우석 교수 등 한·미 공동연구진이 인간 배아줄기세포 생산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전하며 이렇게 평가했다. 이번 개발의 핵심은 배아줄기세포를 만들었다는 것 못지 않게 인간복제가 가능하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한 것이다.
연구를 지원한 과학기술부조차 이날 보도자료에서 “이번 연구결과는 향후 인간개체복제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킬 전망”이라고 썼다. 전문가들은 이 연구를 통해 인간을 복제하는 기술적 걸림돌은 거의 해결된 것으로 보고 있다. 황우석 교수는 “인간복제 시도는 범죄행위”라며 난치병 치료를 위해서만 기술을 쓸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김상희 한국여성민우회 대표는 “치료목적의 배아복제를 허용할 경우, 배아관리의 투명성이 전혀 확보되지 않은 현실에서 쉽게 인간복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번 연구에서 다량의 난자가 사용됨으로써 난자 매매와 생명의 도구화와 같은 부작용을 부를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연구진은 한 개의 줄기세포를 얻기 위해 242개의 난자를 이용했다. 여성단체들은 “많은 난자를 필요로 하는 배아복제 연구는 결국 난자 공급처로서 여성의 몸을 상품으로 만들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난자는 배란촉진호르몬 투입, 초음파 검사, 외과적 채취 등 까다롭고 제공자에게 고통스런 과정을 통해서만 적은 수를 얻을 수 있다. 이번 연구에서는 10여명의 자발적 난자공여자한테서 난자를 구했지만, 선진국에서는 난자 확보난이 연구의 주요 장애물 가운데 하나다.
미국의 한 회사는 난자 제공자에게 4천달러(약 520만원)를 지급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김병수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 간사는 “사회 일각에서 난자매매가 벌어지고 있는 마당에 이런 연구는 난자와 수정란 매매를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자궁에 착상만 시키면 인간으로 자라날 인간배아를 만든 뒤 여기서 줄기세포를 채취했다. 종교계는 생명체인 배아에서 필요한 부분만 얻은 뒤 ‘파괴’하는 것은 생명존엄성을 위협하는 행위라고 비난하고 있다. 천주교 주교회의 이동익 신부는 “아무리 난치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라지만 생명을 도구화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용납될 수 없다”고 말했다. 박병상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 대표는 “문제는 난자를 원료로 보는 의식”이라며 “일단 미끄러운 경사길에 발을 올려놓은 이상 이 기술이 어디까지 갈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녹색연합도 이날 성명을 내어 “생태계의 일원으로서 과학자들의 학문 및 연구 과제의 소임은 희귀·난치병을 근원적으로 예방하는 것에 둬야 함에도 불구하고, 일부 과학자들이 치료 목적을 들이대며 장기 복제기술로 대응해내려 하는 것은 더 큰 질병과 생태계 및 사회적 혼란을 가중시킬 뿐이다”고 비판했다.
한편, 지난해 생명윤리법을 제정한 정부가 세부시행 절차를 마련하기도 전에 민감한 연구를 지원한 데 대한 비판의 소리도 높다. 연구진은 한양대 윤리위원회에서 연구계획을 승인받는 등 윤리적 고려를 했다고 밝히고 있지만, 생명윤리법에 따라 배아복제 연구의 허용범위를 결정할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는 아직 구성되지도 않았다.
시민과학센터는 “생명윤리에 관한 사회적 논란이 한창일 때 연구비를 지원한 정부와 무책임하게 연구를 강행한 연구진은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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