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복연구 거를 총괄기구 '발등 불'
[한겨레 2004-02-18 19:16]
대학 연구비 이대로 좋은가
4.이렇게 바꾸자
산업자원부와 과학기술부, 보건복지부는 각각 ‘바이오산업 육성’, ‘생명공학 육성’, ‘바이오 분야 연구개발 투자’ 등 엇비슷한 이름의 연구지원 사업을 벌이고 있다.
환자나 노인들을 돕는 로봇 개발사업도 ‘인간친화형 복지 로봇 시스템’(과기부), ‘로보틱스 연구조합을 통한 퍼스널 로봇 개발’(산자부), ‘기능형 서비스 로봇 개발’(정통부) 등 각각 다른 이름으로 추진 중이거나 추진될 예정이다. 이 가운데 산자부 한곳의 로봇개발사업 지원규모만도 연 20억원대에 이른다.
하명근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은 “이들 연구지원 사업은 정부의 전형적인 중복지원 사업”이라고 지적한다. 이성우 전국과학기술노조 위원장도 “부처 이기주의 때문에 엇비슷한 사업을 베껴 경쟁적으로 추진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실태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공계 분야에서만 한해 5조6천억원에 이르는 정부의 연구개발 예산이 효과적으로 집행되기 위해서는 예산의 총괄·조정 기능을 맡는 기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거론되는 게 국가과학기술위원회(국과위)의 역할 강화다.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는 국과위는 명목상 과학기술정책의 최고 결정기구로 돼 있을 뿐, 실무를 맡아 할 수 있는 별도의 인력조차 배치되지 않은 상태다.
김훈철 국과위 민간위원(전 한국기계연구원장)은 “어떤 분야와 장비·기술에 예산을 투자할지 등을 국과위가 국가전략적으로 판단한 뒤 중복 투자와 지원이 없도록 실질적으로 기획·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이성우 노조위원장은 “위원회에 민간위원을 50%까지 늘려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예산지원이 이뤄지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부처별로 나뉜 연구관리기관들을 기술분야별로 통폐합해 국과위의 실무기능을 맡겨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른바 ‘국가과학기술기획평가원’(가칭)이 각 부처 연구개발 사업의 통합조정과 기획업무를 수행하고, 예산도 기획예산처에서 직접 받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 산업자원위원회 안영근 의원(열린우리당)은 “연구관리기관을 독립시키면 주무부처의 독단을 견제하고, 엉터리 과제를 발주한 뒤 평가 때도 대충 덮어버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머리뿐인 국과위 '조정 손발 '달아줘야
부처별 기관 통폐합.평가 투명화 절실
개별 연구과제의 심사와 평가를 강화할 수 있는 대책 마련도 절실하다.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 김동광 소장은 “초기 과제 선정의 심사자와 최종 결과 심사자를 따로 두면 선정과정의 문제점을 노출시킬 수 있을 것”이라며 “평가자의 인력풀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학술진흥재단(학진)의 책임전문위원을 지낸 김인중 숭실대 교수는 “교수급 전문가가 10여명밖에 안되는 학진의 행정직 인력구조로는 연구과제 선정과 결과 평가의 엄정함과 정교함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인문사회 분야의 경우 ‘그룹 연구’를 제한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연세대 유럽문화정보센터의 연구비 유용 사례에서 보듯이, 공동연구는 연구비 유용의 먹이사슬 구조를 낳기도 한다. 교수들의 ‘인건비’에 대해서도, 적절한 지적 노력의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백린 연세대 교수(생명공학)는 “잘하고 열심히 하는 교수들에게 과제수행의 총괄책임자로서 연구비를 지급한다면 신나게 일할 수 있는 인센티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순배 전정윤 기자 marcos@hani.co.kr <끝> ⓒ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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